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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최초 '사카쇼' 주인공 신지은 "인생 최고의 순간" - "사케에 대한 편견 없어질 때까지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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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쇼(Sakasho).' 일본에서 사케 최고 장인을 뜻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그 사카쇼에 한국 여성의 이름이 올라갔다. 전세계 321번째이자 한국 여성 최초의 사카쇼. W서울워커힐호텔의 일식당 나무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케 소믈리에 신지은(31) 씨다.

 

서울 광진구 W서울워커힐호텔에서 만난 신지은 소믈리에는 사카쇼 자격 취득 순간을 떠올리면 저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그는 "아직까지도 믿겨지지가 않고 꿈만 같은 상황이다. 인생 최고의 순간을 꼽자면 현재라고 말하고 싶다"고 한다.

 

사카쇼는 일본정부 인가를 받은 일본사케서비스협회(SSI)가 발행하는 자격증이다. 일본인 사케 전문가들도 취득이 어려운 일본 소주와 사케에 관한 최고 장인 공식인증이다. 국내에서 신지은 씨를 포함해 4명만이 사카쇼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일본 도쿄에서 지난 2월 열린 자격증 시험장에는 일본을 비롯해 미국, 이탈리아, 독일, 대만, 홍콩 등에서 찾아온 응시자들이 가득했다. 주로 남성들이 많아 여성 응시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부분 일본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사장이나 와인 소믈리에였다. 그 속에서 신지은 소믈리에는 당당히 자격증을 획득했다.

 

신지은 소물리에가 사케에 빠져든 건 5년 전이다. 그동안 알지 못한 사케의 향과 맛에 취한 운명적인 날을 맞은 것이다.

 

"처음 워커힐 일식당에 신입사원으로 근무했을 때 동강에 놀러갔습니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 날이었어요. 선배가 '스키야키'라는 불고기 철판요리와 사케를 준비해왔는데 비오는 소리와 스키야키의 지글지글한 소리, 사케의 궁합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때 사케의 멋과 맛에 홀딱 빠졌습니다."


사케에 매료된 그가 사케 소믈리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사케 소믈리에 선배로부터 사케를 배워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당시 칵테일 자격증을 보유한 상태였고 와인을 배우고 있었는데, 일식당에 근무하고 있으니 일식에 걸맞는 사케를 배워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테스팅하는 신지은 사케 소믈리에
(서울=포커스뉴스) 25일 오후 서울 광진구 W 서울 워커힐에서 신지은 사케 소믈리에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07.25 허란 기자 huran79@focus.kr

사케 전문가가 되는 과정은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기키자케시'라는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이다. 2단계는 일본 소주를 감별하는 '쇼추 기키자케시(소주 어드바이스)'다. 마스터 단계인 3단계는 사카쇼. 사카쇼는 기키자케시와 쇼추 기키자케시 자격을 가지고 있어야 응시할 수 있다.

 

신지은 사케 소믈리에가 사카쇼를 취득하기까지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수많은 종류의 사케를 맛보는 일이었다. 


"한국에는 수입할 수 있는 사케 종류가 많지 않고 굉장히 비쌉니다. 일본에는 많은 양조장이 있어서 일본 사람들하고 비교했을 때 테이스팅 부분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 친구들은 많은 사케의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세밀하고 섬세하게 맛을 느낄 수 있죠."

뒤떨어지기 싫은 마음에 처음에는 일본을 자주 오가며 사케를 맛봤다. 비행기 값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조력자가 나타났다. 일본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재일교포 친구가 한국에 올 때마다 사케 샘플을 가져다 준 것이다. 신지은 사케 소믈리에게 큰힘이 됐다. 그는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사케들을 맛보며 '이런 특징들이 있구나'라고 익혔습니다. 전체적으로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라고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어로 쓰고 말해야 하는 시험이라 언어적인 부분을 극복하는 것도 큰 과제였다. 기본적으로 JLPT(일본어능력시험) 1급 수준의 실력을 갖춰야 사카쇼 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지은 사케 소믈리에는 일식당에 입사한 2011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6개월 정도 매일 2시간씩 일본어 학원을 다녔습니다. 이후에는 혼자 동영상 강의를 듣고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꾸준히 공부하고 있어요. 혼자 책으로 계속 찾아보고 일본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진짜 힘들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카쇼 시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사카쇼 시험은 일본에서 분기마다 열리지만 한국에서 신청할 수 있는 기회는 2월과 10월 두 번 뿐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사카쇼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수요가 많지 않아서다. 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필기시험은 함께 치르고, 실기시험 때는 2명씩 들어가 칸막이가 쳐져 있는 공간에서 진행된다.

 

"실기시험에서 소주와 사케 60여종을 테이스팅하고 맞춰야 합니다. 소주와 사케를 계속 입에 머금었다가 뱉는 걸 반복합니다. 나중에는 취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날 정도였어요."


인터뷰 하는 신지은 사케 소믈리에
(서울=포커스뉴스) 25일 오후 서울 광진구 W 서울 워커힐에서 신지은 사케 소믈리에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07.25 허란 기자 huran79@focus.kr

사케의 맛을 표현할 때 한국어를 일본어로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점도 난관이었다. 일본인 심사위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신지은 사케 소믈리에는 두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사카쇼 자격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처음 시험을 봤을 때는 너무 어려워서 말도 못하고 어떻게 써야 될지도 몰랐습니다. 두 번째는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세 번째 시험은 자신감을 가지고 봤습니다."

사실 신지은 사케 소믈리에의 주량은 생각보다 약하다. 독한 술은커녕 사케나 와인, 맥주 정도의 약한 술도 한 병을 채 못 마신다. 하지만 사케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 그는 300여 종류의 술을 맛봤다.

 

약한 주량에, 일본어 실력도 부족했던 그가 사카쇼 자격 취득이라는 힘든 길을 선택한 건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도전정신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기키자케시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국내에 300~400명 정도 있지만 사카쇼는 국내에서 4명 밖에 없어요. 원래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이번 기회에 제 자신의 한계를 한 번 더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외로운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도록 끝까지 그를 지탱해 준건 스승인 이덕희 사케 소믈리에였다.

"이덕희 사케 소믈리에가 기키자케시 때부터 끌어주셨습니다. 그분을 멘토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배웠습니다. 많이 알려주셨어요. 울고불고 했어요. 냉정한 분이시거든요."

 

사케 소믈리에는 탁월한 일본 술 시음 능력을 인정받은 프로 테이스터스이자 술의 질을 판별하고 향미를 가려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매기는 일을 주로 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생소한 사케를 널리 알리는 것이 그의 목표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사케 소믈리에로 사케와 궁합이 맞는 다양한 국가의 음식을 매칭시켜서 사케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고 싶습니다. 특유의 누룩냄새 때문에 사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케도 와인처럼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어요. 편견이 없어질 때까지 사케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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