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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11]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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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 - 동물농장에서의 추억

 

20161016일 남은 여정 423.7km

어느새 나의 여정도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부지런하신 큰 형님은 일찍 먼저 출발하시고 나와 희태형은 아침을 먹고 여유롭게 출발했다. 오늘은 희태형이나 나나 꼭 여유롭게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까지 항상 이러고서 더 많이 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오늘은 꼭 20km 정도 떨어진 까리옹 데 로스 콘데스(Carrion de los Condes)까지만 가기로 했다. 해가 막 뜰 무렵의 프로미스타(Fromista)를 나오는데 패딩을 꼭 껴입은 여자 한 분이 지나가길래 인사를 했다. 알고 보니 어제 메세타에서 잠시 스쳐지나간 한국여자 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부엔 까미노하고 지나치거나 혹은 동행 할까요?” 물어봤겠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되었다. 이름은 함승혜. 외국인들은 성을 햄(ham)으로 발음해서 후에 햄누나’, 혹은 미스 햄으로 불리게 되는 누나였다. 햄누나는 한국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 가이드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 기나긴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해가 뜨고 있는 프로미스타.

왕누나인 햄누나와 희태형,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걸었다. 대화도 재밌었고 햄누나가 어린 동생들보다도 하도 활기가 넘쳤지만 확실히 셋이 걸으니 페이스 조절이 어려웠다. 더군다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페이스에 대해서 깊이 고민을 가졌던 희태형이라 나는 희태형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거기다 나도 자주 쉬는 편이 아니었는데, 햄누나는 여유 있게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햄누나와 함께 어쩌다 길가의 한 알베르게를 겸한 바르(bar)에 들어가서 맥주를 한 잔씩 하게 되었다. 이곳은 재미있게도 동물농장이었다. 당나귀, 거위, 오리, 개 등이 함께 마당에 공존하는 이곳에서 뜻밖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당나귀 두 마리가 서로 싸우고 물도 스스로 틀어 마시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길 가다 우연히 들린 동물농장.

당나귀와 희태형이 꽤 다정하다.

이제는 넓은 평지만 계속 이어지는 길을 걷다가 원래 희태형과 까리옹에서 먹으려던 점심을 전 마을에서 일찍 먹게 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식당들이 문을 열지 않고 있었고, 들어갔던 바르가 뭔가 꺼림칙해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는데, 놀랍게도 여기서 먹었던 카스티야 지방의 스프와 파스타가 너무 양질이었다. 우리 중에 가장 미식가인 희태형도 맛있다고 할 정도면 말 다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오늘 하루는 햄누나 덕에 좀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희태형도 평소 같았으면 들어가지 않았을 동물농장에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이 여정에서 목표만 생각하고 여유를 잊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질 무렵, 까리옹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에스피르투 산토(Espirtu Santo)라는 곳으로 정했는데, 너무 깨끗하고 편안했고 무엇보다 일층 침대라는 것이 좋았다.

저녁에 햄누나가 가져온 한국라면과 과자를 안주로 맥주를 마셨다. 이럴 때 또 써먹어야겠다고 기타도 가져와서 쳤다. 시작부터 끝까지 특별하고 재미있었던 햄누나와의 만남. 앞으로의 여정에서 함께 또 어떤 추억들을 만들어 갈지 궁금해졌다.

 

빗방울 떨어지는 까리옹.

<에필로그>

 

아침 먹을 때 빅재미를 준 길고양이.

어제부터 평지만 이어지는 까미노.

당나귀 산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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