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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12]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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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 - 흐린 하늘, 회색 빛의 사아군(Sahagun)

 

20161017

어제 널어놓았던 빨래가 비 때문에 덜 말라서 건조기를 돌리느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사실 오늘은 사아군까지 거의 38km를 가야 했기 때문에 일찍 출발하려고 했지만 결국엔 내가 제일 늦게 나오게 되었다. 늦은 김에 카페에서 카페 콩 레체(Cafe con leche : 카페라뗴)와 뺑오쇼콜라까지 먹고 나섰다. 까리옹을 나서니 해가 이미 떠 있었는데, 어제부터 흐리고 비가 와서 그런지 여전히 어두웠다.

양 쪽으로 가로수가 길게 이어지고 그 뒤로 밀밭이 끝없이 펼쳐진 길을 따라 걸었다. 오랜만에 혼자 걷는 길. 늦기도 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다가 정신 차려보니 일행 하나가 또 붙어있었다. 이번에는 카메라를 메고 있는 한 백인 아저씨였다. 어제도 잠깐 본 적 있는 미국인 아저씨였는데, 오늘 우연히 같이 걷게 되었다.


날씨가 흐려 아침인데도 어두웠다.

우리 아버지 정도 나이의 아저씨(이름은 까먹었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자신이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고 하며 웃었다(보통 미국에 사는 흑인들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역사를 전공했다고 하자, 아프리카 역사를 늘어놓더니 자기가 아프리카에서 군인으로 복무한 것도 말했다. 그리고 대학에서 여자친구를 만나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가정을 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취직한 것도 말해주었다. 그는 자기가 윈도우를 만든 사람 중에 하나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취미 생활은 그 뒤에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자기가 지금 은퇴하고 사진 찍는 것처럼 취미생활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미국인이라고 해서 뭔가 너가 지금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해 보아라.” 같은 자유지향적인 조언들을 할 줄 알았는데,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생각은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하구나를 느꼈다.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어준 대화였다.

다음 마을에서 아저씨는 점심을 먹는다고 하셨고, 나는 조금 더 가기로 했다(사실 혼자 걷고 싶었다). 마을 하나를 더 지나고 조그만 마을인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에서 수제 햄버거와 맥주 한 잔을 먹었다. 보통 한국에서 먹었으면 2만원 가까이 받는 수제 버거가 여기에서는 4유로(5천원) 정도였다. 심지어 맛도 상당했다.


점심에 맥주 한 잔 만한 게 없다.

한 시간 가량 휴식을 취하고 남은 길은 12km 정도. 그 사이에는 마을이 하나도 없었다. 마을을 나서서 다시 길을 걷는데 뭔가 사람 하나 마을 하나 없이 밀밭만 있어서 오싹했다. 그러다가 어떤 아저씨 둘이 나무아래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한 아저씨가 가죽부대에 담긴 와인을 쭉 짜서 마시면서 나도 한 번 마셔보라고 했다. 주길래 마시긴 했는데, 와인에 수면제 탄 건 아니겠지? 하는 뜬금없는 불안감이 생겨서 발걸음을 빨리 해서 그 곳을 벗어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

넓은 밀 언덕들만 펼쳐져있는 길, 노래 부르며 걷다가 뭔가 길을 잘 못 들었나 싶었는데, 조금 더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 버렸다. 그래서 도중에 어떤 마을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사람 하나 없이 바람만 부는 마을이 좀 오싹해서 여기도 빨리 빠져나왔다. 날씨가 어둡고 사람도 하나 없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기분이 좀 이상했다.

사아군까지 차도에 나란히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보이는 것은 계속 누런 밀밭, 또 밀밭. 이제는 이 풍경도 지겨울 때가 되었다. 먼 길을 걷고 또 뭔가 긴장을 계속해서 유난히 지치는 날이었다. 계속 똑같은 풍경만 계속 되다보니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지쳐 있었다. 그러다가 고가도로 밑을 지나자 저 멀리 지평선에 제법 큰 마을 하나가 보였다. 드디어 사아군이었다. 그 자리에서 환호를 한 번 지르고 부지런히 걸었다.


당시 사아군이 보이자 환호를 지르고 찍었던 사진.

보이기는 했는데 거기까지 도착하는데 사십분이 더 걸렸다. 너무 힘들어서 가라는 길 놔두고 차도 따라 바로 마을에 들어섰다. 회색 하늘에 조용한 마을, 건물들도 무언가 전통적이지 않고 철판 지붕에 낙후된 것들이 많아 삭막해 보였다. 그날따라 삭막했던 내 마음도 한 몫을 했다.

16세기에 지어진 트리니다드 교회(Iglesia de la Trinidad)를 개조한 시립 알베르게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햄누나와 희태형은 내가 햄버거를 먹은 마을에 묵는다고 했다. 혼자 마트에서 밥을 사서 먹고 밤중에 일기를 쓰는데, 옆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밥을 만들어 먹으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그 중에 한 여자는 저번에 온타나스에서 밉상 짓을 해서 희태형의 눈 밖에 났던 이탈리아 여자였는데, 여기서도 어김없이 그 바가지가 세고 있었다. 가뜩이나 침실과 부엌이 같이 있는 구조라 자는 사람들이 다 들을텐데도 이 민폐쟁이들은 발을 구르며 노래까지 불렀다. 결국 할머니 한 분이 화가 나서 두 번이나 경고를 했는데도 당당했다. 다행히 나는 잠귀가 밝지 않아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트리니나드 알베르게.

알베르게에서 본 유모차. 처음엔 루벤의 유모차인줄 알았는데, 애기 엄마였다. 세상에.

 

[다음 주 계속]

[/사진-강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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