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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20]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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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언덕 위에 외딴집 한 채가 서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 까미노 (Camino) – 집시와 그의 반도네온을 따라가고

 

20161024

캄포나라야(Camponaraya)에 도착하여 작은 식당인 메종 엘 렐로즈(Meson el Reloj)’에서 아침을 먹게 되었다. 시계의 집이라니, 식당치고 독특한 이름이다. 아마 식당 맞은 편 큰 길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작은 시계탑과 연관이 되어 있어 보였다. 보까띠요(하몽을 끼운 바게트)와 기운을 차리기 위해 까페 콩 레체(카페라떼)’를 주문했다. 너무나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한 시간 조금 넘게 앉아 있던 건 좀 심했다 싶었다.

거리로 나와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지만 사이사이로 살짝끔 파란 하늘이 비치기도 했다. 캄포나라야를 나서니 길 주변으로 온통 포도밭이었다. 굽이굽이 언덕들 위로 단풍처럼 빨갛게 혹은 노랗게 물들은 포도잎들이 길이길이 이어졌다. 그 뒤로는 높은 산맥들이 온 사방을 막고 있었다.

 

빨갛게 단풍진 포도잎들.

 

뒤에서 다이아나가 나를 불렀다. 아까 베드버그는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나도 의문이었다. 베드버그에 물리면 그 부위가 부으면서 미친 듯이 가렵다고 했는데, 상처는 아무리 연고를 발랐다고 해도 너무 멀쩡했다. 베드버그에 물린 게 아니라 내가 입은 후리스의 지퍼에 긁힌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건 다이아나도 베드버그가 마음에 걸렸는지 이따가 숙소에 가서 같이 빨래를 돌리자고 했다.

카카벨로스(Cacabelos)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옛 골목길을 지나니 어디선가 반도네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이너풍의 유럽 감성을 몰고 다니는 그 사람은 바로 지난번 햄누나가 폰세바돈 알베르게에서 만났다는 그 괴상한 프랑스의 집시 음악가였다. 사실 진짜 집시인지는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까무잡잡하고 심하게 뚜렷한 이목구비에 마치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듯한 그 옷차림은 당연히도 집시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했다. 다이아나는 마을 카페에 남고 나는 집시를 계속 따라갔다. 그는 주변에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손의 반도네온으로 계속 연주를 하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섞은 무언가를 계속 외쳤다. 앞에 장애물을 이리저리 뛰어 넘기도 하고, 어느새 내 뒤로 뒤쳐져 사라지기도 했다.

 

구름 낀 카카벨로스.

 

장애물을 뛰어넘고 다니는 프랑스인 집시 음악가.

 

언덕에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포도밭 위로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햇빛이 비췄다. 가끔 나오는 숲에서는 내 발자국과 아름다운 새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나의 명상을 깨고 그 반도네온 소리도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 번은 나와 자전거 순례자 네 명 앞에서 반도네온을 연주하며 혼자 연극 대사 같은 말을 읊었는데,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혼자 홀연히 연주하며 언덕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포도언덕.


집시 친구와 함께.

반도네온을 연주하며 유유히 포도밭 사이로 사라지는 집시.

이 길의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는 스페인 최서단 갈리시아(Galicia)지방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나는 갈리시아로 진입하는 산 밑, 작지 않은 중세마을인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에 도착했다. 바르에서 간단하게 맥주와 파스타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는데, 곧 햄누나가 도착했다. 누나는 배가 많이 고팠는지 파스타 두 접시를 시켜서 먹었다. 곧 다이아나도 왔는데, 우리는 다다음 마을인 트라바델로(Trabadelo)에서 만나자고 했다. 다이아나를 보내고 햄누나와 함께 출발했다. 어느새 늦은 오후라 지치기도 했고, 산이 가까워지며 오르막길도 생기며 너무 피곤했다. 트라바델로에 한국 라면과 김치를 파는 가게가 있다고 들어서 그것만을 기대하며 걷는 중이었다. 한 번은 트라바델로 전 마을인 페레헤(Pereje)에 도착했는데, 구글이 위치를 잘못 알려줘서 비야프랑카에서 거꾸로 온 것처럼 보여 둘 다 멘붕이 오기도 했었다.



중세의 모습이 남아있는 작지 않았던 마을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트라바델로에서 희태형을 만나 셋이 라면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라면에 양배추로 담근 특이한 김치 모두 완벽했다. 역시나 처음 보는 한국인 두 여자 분들도 만날 수 있었다. 라면과 김치가 있는 곳은 언제나 한국인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날은 벽날로가 있는 알베르게에서 햄누나와 희태형, 그리고 프랑스인 집시, 커다란 개와 그 주인, 새끼 고양이, 마지막으로 알베르게 주인까지 함께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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