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21]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기사수정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 까미노 (Camino) 산 넘어 갈리시아(Galicia)

 

20161025

어젯밤에 베드버그 퇴치를 위해서 알베르게 주인에게 빨래를 부탁했었는데, 내가 돈을 아직 안내서 그런지 새벽에 추워서 침낭을 찾으러 나가보니 숨겨버린 것 같았다. 결국 아침에 주인이 출근할 때까지 한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침까지 비가 조금 내려 흐린 길을 나섰다. 늦게 출발한 관계로 마음이 살짝 급했다. 도중에 핸드폰 USIM 데이터를 다 써버렸다. 문제는 다음 달 치를 미리 사 놓았는데, 내 다른 짐들과 함께 산티아고에 미리 가 있었다. 이제 여기서부터 산티아고까지 와이파이에 의지해야 했다.

도중에 카페에서 다이아나를 만났는데, 마침 현금을 다 썼는데 다음 마을에 마지막 ATM기가 있다는 정보를 알려줬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마을 다음에는 저번과 같은 산 하나가 또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에서 충분히 쓸 돈을 챙기고 산에 들어섰다.




푸른 나무와 풀들이 가득한 베가 데 발카르세. 폰페라다 이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어느덧 가을로 한창 접어들고 있어 산에는 밤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우거진 숲과 습한 공기, 그리고 바닥의 바위들이 마치 한국의 산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도가 높아지자 키 큰 나무들이 줄어들고 목초지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라 파바(La Faba)라는 산 중턱의 작은 마을에서 쉬게 되었는데, 여기서 어느 한국인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 와인을 한 잔 권하셔서 마시다가 아예 여기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직접 사주시기까지 하셨다. 이 바르는 채식 주의자를 위한 식당이었는데 식당 안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다이아나는 이곳이 너무 좋다며 여기서 멈출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름을 알고 있는 프랑스 집시 벵쟈멩(Benjamin)도 만날 수 있었다.

은퇴하고 둘이서 세계여행을 하신다는 두 부부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 연배 정도 되셨는데, 아이들은 따로 없다고 하셨다. 비록 나처럼 많은 거리를 걷지는 못하시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한 길을 걸으시는 두 분을 보며 부모님이 생각이 났다. 언젠가 꼭 이 길을 걸으실 거라고 하셨던 두 분도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산을 여기저기에 곡물을 수확하고 있는 트랙터들이 보였다. 가파른 산을 아슬아슬하게 누비는 트랙터를 보며 인간들의 개척 정신에 새삼 놀랐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땡그렁 땡그렁 들리는가 싶더니 앞에서 소떼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카우보이. 아니 카우아저씨 한 분이 말을 탄 채로 소를 몰고 있었다. 그 뒤를 개 두 마리가 따랐다. 신기한 게 소들은 옆으로 빠지지도 않고 정확하게 사람들이 닦아놓은 길로 잘도 다녔다. 높은 산 위의 목초지, 워낭소리와 방울 소리, 들판의 말들. 이 모습들이 낮이 익다 싶었는데 바로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의 그 풍경과 비슷했다.





스페인 시골 풍경들을 뒤로 하고 곧 갈리시아의 시작을 알리는 커다란 석주(石柱)를 만날 수 있었다. 석주 표면 위에는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이 남겨놓은 글들이 무수히 적혀있었다. 한글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산티아고 길의 마지막인, 갈리시아 여정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레온을 뒤로 하고, 갈리시아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석주.

한글도 드문드문 보인다.

산꼭대기 마을인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저 멀리멀리 끝없이 펼쳐진 산등성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이른 성취감들이 마음 가득 밀려왔지만 아직 갈 길은 더 남았다. 바르에서 또르띠야와 생맥주로 배고픔을 해결했다. 두 주인아주머니가 내 기타를 보더니 연주를 해주면 맥주 한 잔을 더 주겠다고 제안을 하셨다. 그래서 뜻밖의 작은 연주회를 가지게 되었다. 오랜만에 기타를 칠 일이 생겨서 반가웠다.


중세의 회색 바위건물들이 인상적이었던 오 세브레이로

오늘 목적지인 폰프리아(Fonfria)까지는 생각보다 먼 길이었다. 특히 오르내리락하는 산길이였기 때문에 직선거리에 비해서 시간도 더 걸리고 더 지쳤다. 계속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폰프리아까지 변변찮은 숙소도 없어 보였기 때문에 계속 발걸음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 폰프리아 전 마을에서 아까 채식주의자 식당에서 하루를 머물겠다던 다이아나와, 미국인 친구 한 명을 만났다. 두 사람은 여기 있는 숙소에 묵으려고 했는데, 침대에 벌레가 엄청 많은 것을 보고 그냥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셋이 함께 해질 무렵 겨우 폰프리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쯤 됐을 땐 언덕 나올 때마다 죽을 것 같았다.

폰프리아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었는데, 알베르게는 꽤 규모도 크고 깨끗했다. 저녁은 따로 지어져 있는 갈리시아 전통 가옥에서 전통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다시 만난 햄누나와 희태형과 함께 갔다. 우리는 갈리시아 전통 음식이라고 나온 음식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흑미밥에 누가 봐도 시금치국과 불고기 덮밥이 나왔다(열심히 먹느라 사진은 못 찍었다). 거기에 하우스 와인까지. 이런 거 보면 사람 사는 게 지구 반대편이든 비슷한 것 같다.

[다음 주에 계속]

[글/사진 강민재 기자]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koreafrontier.com/news/view.php?idx=1063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