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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강민재의 유럽여행기 #22]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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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 까미노 (Camino) – 고난의 행진, 사모스 수도원

 

20161026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출발하기 전, 집시 벵자멩의 반도네온 연주에 알베르게 아주머니와 순례자 아저씨가 함께 춤을 추는 모습도 보고 이미 동이 튼 폰프리아를 나섰다. 상쾌한 아침 공기가 산 내려가는 중에 어디든 있었다. 갈리시아로 넘어오면서 습해진 공기가 기타 때문에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풀과 나무들의 맑은 향기를 맡기에 좋았다.


동이 트는 폰프리아.

산 밑으로 펼쳐진 갈리시아의 목초지.

습한 갈리시아의 기후 때문에 땅으로부터 이격시킨 것이 분명한 갈리시아의 전통 움막이 보이는 마을을 지나, 검은 기와 파편들이 인상적인 집들을 지나쳤다. 어느새 해가 하늘 높이 떠올라 있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기 때문에 햇빛이 굉장히 강했다. 그나마 산에 잔뜩 우거진 갈리시아의 숲이 그늘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다.


갈리시아 전통 움막.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에서 맥주를 곁들여 일종의 브런치를 먹었다. 목이 굉장히 타서 두 잔이나 마셨다(이게 실수였다!). 지나가던 햄누나도 들어와서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트리아카스텔라를 나서면 길은 두 개로 나누어졌다. 일반적인 순례길과 스페인에서 가장 큰 중세 수도원 중 하나인 사모스(Samos) 수도원을 지나는 우회로였다. 굉장히 고민이었다. 비교적 짧은 길이냐, 몇 킬로 더 돌아가지만 의미 있는 유적을 보느냐. 햄 누나는 사모스를 지날 예정이었다. 희태형은 사모스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 아무래도 역사학도가 유적지를 지날 수 없었기에 어느새 발걸음은 사모스 수도원으로 향하는 차도 옆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이 우회로가 상당히 길었다.


갈리시아의 숲길.

일반적인 경로는 걸어보지 않아서 어떨지 모르지만 사모스를 향하는 길은 상당히 멀었다. 크고 작은 언덕 경사들을 오르내리는데, 이게 예전처럼 완만한 카스티야의 밀밭이 아니라 나무뿌리 가득한 산길들이었다. 한국의 일반적인 여름 숲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거기다 유난스럽게 습한 갈리시아의 공기에 땀이 나고 아까 마신 두 잔의 맥주 덕분에 몸이 퍼져버렸다. 특히 숲 속에서는 날벌레들의 공격, 숲이 끝나는 마을에서는 울타리에 걸려있는 거미줄들이 붙었다. 그리고 다시 숲. 순례자들이 많이 지나는 루트가 아니라 그런지 사모스까지 마을들은 있었지만 쉴만한 편의시설도 없었다. 시간도 꽤 지나서 마음도 급했다. 몇 번을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언덕 밑, 저 멀리 나무들 사이로 웅장한 사모스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산을 내려와 수도원이 질 보이는 담장 위에 앉아 아름다운 수도원을 바라보며 간식을 먹었다. 인적이 상당히 드문 수도원은 자체 운영하는 알베르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기념으로 도장만 받아왔다. 도시인 사리아까지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시간은 상당히 애매했다. 4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숲 사이로 보이는 사모스 수도원.

 

아름다운 강줄기가 곁으로 흐르는 사모스.

여전히 인적 드물고 거미줄이 나를 휘감는 푸릇푸릇한 목장 길들과 숲들을 걸었다. 다른 순례자들은 한창 쉬고 있을 시간. 한참을 걸어 저 멀리 사리아(Saria)가 보였다.


목장과 숲 길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어디든 한가로운 스페인의 소들.

사리아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는 약 100km. 스페인에서는 산티아고 완주 증서가 일종의 스펙 중의 하나라고 한다. 산티아고에서부터 100km를 걸으면 증서를 발급해주기 때문에, 바쁜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은 여기 사리아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부작용 때문인지 사리아부터 갈리아까지 특히 상업화가 많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전보다 알베르게 수도 더 많고 물가도 조금 더 올라갔다. 사리아에 들어서니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꼬질꼬질 먼지 뒤집어 쓴 내 모습과는 달리 아직 깨끗한 모습의 사람들. 산티아고가 가까워졌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바르에 들어가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핸드폰을 보니, 희태형은 저 멀리 한참 더 가버렸고 햄 누나는 다음 마을까지 3km 더 갈 거라고 했다. 나도 어느새 정이 많이 들어버린 사람들과 헤어져 모르는 사람들과 다시 관계를 갖는 것이 지쳐 있었다. 나도 다음 마을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사리아의 거리.

사모스를 나서며. 해가 지고 있는 중이라 마음이 급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사리아를 벗어난 숲길은 어느새 어두웠다. 길 가다가 철도 위에서 한 무리의 중고등학생 정도의 무리들을 만나 인사는 했는데, 뭔가 험악해 보여서 어두운 숲을 걷다보니 혹시라도 동양인이라고 해코지를 할까 두려워졌다. 또 요새 혼자 다니는 순례자들을 상대로 강도 행위도 빈번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더욱 두려워졌다. 이미 라이트를 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숲이 어두워졌다. 나는 긴장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저 언덕 쪽 불빛들이 보이는 마을로 뛰었다. 바르바델로(Barbadelo)라는 작은 마을. 알베르게 하나가 보였다. 굉장히 깨끗해 보였는데 순례자들이 야외 테라스에 앉아 즐겁게 떠들며 쉬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려 들어갔는데 식당 안에 앉아 있는 다이아나를 보았다. 이 친구랑은 참 의도치 않게 자주 만난다.

여기에는 햄 누나가 없었는데 누나도 나처럼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잘 도착했는지 걱정 되었다. 누나는 지난번에 핸드폰도 고장 나서 연락이 안 되었기 때문에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내일 연락이 꼭 닿기를.

참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던 하루였다. 하지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누우니 하루의 피로가 싹 씻겨나갔다. 어느새 후반기를 걷고 있는 산티아고 길. 성취감인지 아쉬움인지 마음이 복잡하다.

[다음 주에 계속]

[글/사진 강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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