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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부산국제영화제-김동호 명예위원장 "밤새 술 마시며 얘기할 수 있는 영화제는 부산 뿐" - "스무살 성인이 된 부산국제영화제 나에겐 자식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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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극과 극인 남포동과 해운대를 빠르게 오가기 위해 택배 오토바이에 짐 대신 제 몸을 실었다. 신문지를 깔고 땅바닥에 앉아 오가는 영화인들을 붙잡고 술을 곁들여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된 1996년부터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던 2010년까지 15년간 집행위원장의 자리에 있던 김동호 명예 위원장(78)의 이야기다.

 

작가나 감독이 완성된 작품을 '자식' 같다고 표현한다. 시작부터 함께한 김 명예위원장에게 부산국제영화제도 같은 의미다. "벌써 창설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스무 살 성인이 됐다는 생각을 하니 감회도 깊고 보람도 느끼고 그렇습니다."

 

첫 출발을 알린 1996년, 할리우드를 따라가던 여타 영화제와 달리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에 집중했다. 그 노력은 스무 살이 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 100'이라는 특별프로그램으로 결실을 보았다. 그 역시 "올해에는 프로그램부터 성년이 되는 해답다는 느낌이 듭니다"라며 만족감을 보였다.

 

김동호 前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포커스뉴스)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수영강변대로 영화의 전당에서 김동호 前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2015.10.01 김유근 기자 kim123@focus.kr

 

수차례 대만 '금마장영화제'와 홍콩 '금상장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여배우이자 감독인 실비아 창(대만)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 자리를 맡았다. 그리고 허우 샤오시엔, 지아장커, 왕빙(이상 중국), 아피찻퐁 위라세타쿤(태국), 고레에다 히로카즈(일본), 에릭 쿠(싱가포르)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들이 대거 부산을 찾는다. 이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남포동에서 해운대까지 오가기가 쉽지 않거든요. 거리도 멀지만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에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려고 택배 회사에 연락해서 오토바이에 짐 대신 날 싣고 운반해달라고 했죠. 부산국제영화제 초창기 3년 동안 그렇게 다녔어요. 그때는 길거리에 신문지 깔고 앉아서 지나가는 외국 배우, 감독들을 땅바닥에 앉혀놓고 함께 술 마시고 밤을 지새웠죠. 그런 기억들은 아직까지 모두가 기억하는 추억거리에요."

 

김 명예위원장은 영화인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술과 이야기를 가까이 두는 영화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린다. 그 비결은 영화진흥공사 사장이었을 때 '오늘의 영화감독'으로 꼽히던 강우석 감독, 장선우 감독, 정지형 감독 등 일명 '오영감'(오늘의 영화감독을 줄인 말) 멤버들과의 잦은 만남 덕분이라고 말한다.

 

"2013년에 제가 직접 '주리'라는 단편영화를 연출했어요. 그 때 많은 영화인이 카메오라도 참여하고 싶다고 했죠. 양익준, 박정범, 윤상현 등 감독들이 먼저 나섰어요. 그런가 하면 강우석 감독은 편집은 내가 해야 한다며 자진했고, 김태용 감독은 조감독을 자처했어요. 내 영화라기보다 영화계 공동의 영화가 됐죠."

 

김동호 前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포커스뉴스)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수영강변대로 영화의전당에서 김동호 前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2015.10.01 김유근 기자 kim123@focus.kr

 

15년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오던 2010년을 그는 "행복하게 떠났다"고 기억한다. "영화의 전당이 개관하기 1년 전, 이 장소가 완성되면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이 달라지고, 아시아의 영상 허브 역할을 할 거로 생각했어요. 새 장소에서 새 집행위원장이 이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가 물러났죠. 제가 원하던 때에 물러날 수 있었고 속된 말로 박수받으며 떠났기 때문에 굉장히 행복하게 나온 거죠."

그는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활동이 더 왕성했다. 전 세계 80여 개의 유명 영화제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외국에서 피부로 느낀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은 달랐다. "다른 영화제의 심사위원, 초청된 감독, 배우들도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 중 하나, 아시아권 최고의 영화제'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해외 영화제와 다른 부산국제영화제만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밤새도록 술 마셔가면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제라는 건 부산 아니면 볼 수가 없죠"라고 웃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평탄한 길만 걸어온 건 아니다. 지난해에는 '다이빙벨' 상영에 정치적 해석과 논란이 이어졌다. 김 명예 위원장은 "성년이 되어가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영화제 프로그래밍의 독립성은 인정해줘야 한다, 정부나 정치권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서로 존중해나가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성장통을 겪으며 성년이 된 부산국제영화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초심'이라고 말한다. "아시아 신인 감독을 발굴하고 이들의 제작을 지원해준다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기본 콘셉트를 지켜나가며 하나하나 발전시켜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면 25년 후, 50년 후에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끝 낸 김 명예회장은 서둘러 이동하려 했다. "이번에도 택배 오토바이 타실 겁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픽 웃으면서 "승용차 타고 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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